조릿대

1950년 한국이 한국 전쟁의 전화에 시달리며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웠을 때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라쇼몽”을 만들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라쇼몽”과 “수풀 속에서 “를 원작으로 각색해서 만든 걸작 영화이다. 주요 출연자가 단 6명만이 이 흑백 영화는 이기적인 위선의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불후의 명작으로 유럽 유명 영화제의 작품상 감독상을 휩쓸면서 미국의 아카데미 상까지 획득함으로써 일본을 일약 영화 예술의 강국으로 부상시켰다. 영화 후반에 살인 사건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명연기는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 끼치도록, 그 때의 감동이 생생하지만 저는 한편 화면 배경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궁금했다. 심문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배우들 뒤의 담 너머로 강풍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배경으로 서고 있다는 하나의 소도구에 불과했지만 그 장면을 관객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자에게 들렸다. 무당의 시끄러운 방울 소리에 따르고, 모진 바람에 과자의 나무 떨듯이 몸을 떨다 나무의 모습이 마치 억울하게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이 온몸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울부짖는 듯했다. 향기로운 꽃도 달콤한 열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대나무의 막강한 기상조차 갖추지 못한 꼴사나운 사사를 절묘하게 배경에 배치하고 활용한 “쿠로사와”감독의 뛰어난 은유였다. 1984년 MBC에서 “텔레비전 독서 토론”을 연출한 당시 서울 모처의 미 던 선생님 댁을 방문해서 마당에 가득한 그 나무를 발견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뒤 평생을 서울을 근거지로 살아온 나로서는 사실은 그 나무 이름조차 모르는 곳이었다. 매우 기쁘게 나에게 미 던 선생님은 산죽이라고도 불리는 조릿대라고 내게 말했다. 따뜻한 남도 지방에서는 흔한 나무지만 서울 근동은 추워서 잘 되지 못할 나무이라고 말했다. 1994년 회색 바다가 누워서 있는 강화도의 나라 물 산 중턱에 작업실”관개재”을 짓고 가장 먼저 세를 심었다. 추운 곳에서는 생육이 어렵다고 말하던 미 던 선생님이 떠오르지만 개의치 않고 함부로 심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욕심이다, 사사는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고 말았다. 아쉬움이 컸지만, 기후가 적합하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심은 내 잘못했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없다. 사사에 대한 집착은 포기하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조금 흐르고 2017년, 일산에 작은 집을 지었다. 생애 3번째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은 소박한 집이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에 미련을 버리지 않고 다시 세를 요구하고 몇개 심었다. 수십년 동안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날씨도 꽤 부드러워졌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기대와 낭비 없는 나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내는 꽃도 없이 그늘도 못 만들고,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그냥 보기에 미련을 못 버리나를 전혀 이해하기 힘든 표정이다. 남향 집이지만 높은 언덕 끝에 위치한 나의 집은 바람의 거리라서 강화보다는 적을지도 모르지만 사계절의 바람이 많아 겨울이면 추위와 살을 에는 키타 서풍이 결코 쉽지 않은 곳이다. 대나무를 심으면서도 과연 이들이 살아남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잎이 녹색을 잃고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고 종내는 바싹 말라서 뒤틀리고 있는 잎 한조각도 남김없이 잃었다. 모토 이치의 대나무의 일종인 사사는 늘 푸른 나무여서 겨울에도 녹색을 잃지 않는 것이지만 역시 기후가 맞지 않아 결국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깡마른 노란 가지이지만 남은 사사를 볼 때마다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뿌리칠 수 있다 없는 자신의 욕심을 자책하고 빼가려 했지만 귀찮아서 모아 둔. 그런데 겨울이 지났는데도 올 봄, 신기한 이야기에 잎이 하나 둘씩 내기 시작하지 않을까. 얼마나 기뻤는지. 이것이 무슨 조화인가 생각했다. 그 후는 매일 아침 눈이 일어난다고 외출하기 전에 사사에서 알아보는 것이 일이었다. 여름에 접어들고 꽤 잎이 무성한 오랜 장마를 거치면서 완전히 소생한 것 같다. 사사를 심은 조경 업자는 “나무가 중병을 앓고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이미 여러 차례 태풍이 우리의 정원을 가로지르고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를 만들어 내는 무수한 떨림이 나의 가슴을 두드리며 영화”라쇼몽”의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킨다. 세찬 바람 소리에 뒤섞인 사사의 한적함을 들으며 아내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아라시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라쇼몽”의 주인공 사무라이가 죽음의 커튼 너머에서 무당에게 불리는 사사를 흔들며 낮은 내뿜고 있던 독백이 들린다. 어느덧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피로를 극복하고 겨우 소생한 이 가련한 나무는 곧 겨울과 마주치는 것이다. 부디 원하고 키타 풍한 눈의 혹독한 겨울을 흔들림 없이 극복하고 내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몸을 다쳐 살아난 조릿대

– 몸을 다쳐 살아난 조릿대

– 몸을 다쳐 살아난 조릿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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